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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깻말

  12월 말, 찬 공기 내려앉는 12월 25일. 모든 디비전에게 중왕구가 지원해준 휴식시간이 생겼다. 넓고 따듯한 공간에 신주쿠와 오사카 디비전이 모였다. 오사카와 신주쿠 두 디비전인 어떤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두 디비전은 무대에서 싸우던 상대이며 경쟁자이지만 지금만큼은 경계도 경쟁도 없이 함께 왁자지껄하며 잔잔한, 연말분위기로 가득이다.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며 군침을 삼키게 하는 향을 내는 음식을 진열한 큰 식탁 주위에 뜨문뜨문 둘러앉은 사람들이 가끔 몇몇 매캐한 눈빛을 교환하고는 했다. 아마 지난 시간의 경험으로 인한 주시일까.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연말 휴식을 즐긴다.

  따스한 온기를 서로 나눌 때 다소 다른 공기를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평일이었을 목요일이 성탄절로 인해 휴일로 바뀌었지만 일본 넘버에 들어가는 회사는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인지 돗포에게 재택근무령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는 아득하며 넓은 휴양 주택의 모퉁이에서 작은 상을 피고 노트북을 뚫어보며 서류를 만지고 있다. 입은 계속, 계속 움직이며 ‘하아아….’를 잠잠히 중얼거린다. 그런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이자나미 히후미다.

  그는 타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돗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히후미 역시 돗포가 유일무이한 친구였기에, 오늘도 역시 해바라기처럼 돗포의 옆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뽀 도뽀〜!! 연휴인데 일 해야 해〜??“, ”도와줄까?“, ”무슨 서류야? 우왓, 대단하네 돗포…“ 등…. 가만히 앉아 중얼거리며 일을 하는 돗포 옆에서 달각거리는 키보드 소리를 동무삼아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아마 평소보다 일을 보채는 것을 보아 히후미는 쟈쿠라이에게 가고 싶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쟈쿠라이와 히후미, 돗포는 오랜만에 조우한 시점이었기에 안부도 서둘러 묻고 싶었을 것이고. 다만 건강해보이며 도츠혼 사이에서 함께 연말을 즐기는 쟈쿠라이와는 상반되게 오늘도 일을 하고 있는 돗포가 걱정되어 챙기는 모습에서 그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소중한 우정이 엿보였다.

  마천랑의 리더 쟈쿠라이는 도츠이타레 혼포의 중심에서 둘러싸여 투명히 조명을 담아 울리는 와인잔을 들고 서서 웃고 있었다. 항상 보여주는 그의 인자한 웃음은 만인을 안심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늘은 의사가운보단 편한 옷을 입으라는 히후미의 권유로 폭이 넓은 옷을 입은 쟈쿠라이는, 편안하고도 어쩌면 늘어진. 지금 이 풀어진 분위기가 어색한 듯 계속해서 서있길 유지하다가 이내 의자를 끌어 꺼내 앉았다. 쟈쿠라이가 의자에 앉자 푹신한 옷은 부드럽게 접혀 올라왔다. 그는 차분히 옷 매무시를 정리했다.

  그의 주위에는 츠츠지모리 로쇼, 누루데 사사라, 아마야도 레이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들어보니, 오늘은 술 이야기이다. 누가 더욱 술에 대한 지식이 깊은가에 대한 토론이 시작 된 참이었다. 와인의 종류, 이름, 경험 등 나름의 여러 경쟁이 도츠혼 사이에서 일어 났지만, 이내 큰 주장이 오간 뒤 승자는 아마야도 레이로 결판났다. 사사라는 계속 썰렁 개그를 치기만 해서 탈락되었다. 로쇼는 토론 도중 몇 잔 집어마신 술에 취해 얼굴을 잔뜩 구긴채 울리는 머리를 신경 쓰느라 시간이 지나니 아무 말이 없었다. 결국 이런 콤보로 인해 경쟁이 무색하게 승은 가만히 콤보를 지켜보며 ‘ㅋㅋ’하고 있던 아마야도 레이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그 모습을 쟈쿠라이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어쩌다 가끔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조용히 숨을 몰아쉬기도 하면서.

  이 모든 모습이 연말이라는 실로 가법게 묶여 잠시 하나가 되었다. 그 모습은 신기했고 잠을 불러왔다. 빛없이 어두운 밤하늘에 수없이 박아 넣은 별빛이 쏟아내려는 하소연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새의 인생처럼. 온 세상을 함께할 우리들. 너와 나.

  …멀리서 흐리게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빠르고 행복하게 타들어가며 주변을 밝히는 모닥불 속의 장작과도 같게 보였으며 활공하는 새의 흉터가 남은 투박한 날개와도 비슷해 보였다.

  중왕구의 여유일까, 일종의 동정일까 변덕일까 우리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때로는 이런 날도 있는게 어떨까’ 하며 오늘이 우리들의 미래에 변화를 심어줄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은 생각해본다. 높은 빌딩의 새까만 오사카 하늘을 배경으로 빌딩의 꺼진 불빛 사이, 총총 쏟아지는 별과 함께 빛나는 한 층은 그들이다.

  오늘 밤은 유리로 된 그들의 빌딩에 새가 부딪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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