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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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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고급 가죽 의자에 깊숙히 기대어 앉은 채 신문을 보던 히토야는 복도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에 문가를 곁눈질했다.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

 

  비서가 지나다닐 때 들려오는 차분하고 일정하게 또각거리는 구두 발소리가 아닌, 점점 빠르게 뛰고 있는 듯한 탁탁거리는 간격이 점점 좁아지는 발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짤랑거리는 소리가 점차 크게 달려오자, 심호흡을 한 히토야는 숨을 잠시 멈춘 순간 문이 쾅 열리며 들이닥치는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히토야 씨!! 저희 왔슴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어때, 혼자 외롭게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아도 돼서 정말 기쁘지?”

 

  부피는 커다랗지만 그리 무거워 보이지는 않는 직육면체의 상자를 혼자 들고 있는 쥬시와 비교적 작은 상자 두 개를 쌓아올려 품에 안고 있는 쿠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히토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정말이지 기뻐서 몸둘 바를 모르겠구나. 저 수상한 물체들은 뭐냐?”

 

  “하하, 보면 알 거야. 쥬시, 어디가 좋아 보이냐?”

 

  “아무래도 바 테이블 옆이....”

 

  “그치? 여기에 설치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바 테이블 근처에 상자들을 내려놓고는 쪼그리고 앉아 윗부분을 봉해뒀던 테이브를 떼어내기 시작하는 쥬시와 쿠코의 모습에 경악한 히토야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잠깐, 잠깐만! 설치한다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후후, 걱정 마시게나…. 본좌들은 에비니저 스크루지가 미래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러 온 대천사들일 뿐이니….”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포즈를 취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고 더더욱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쥬시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히토야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쿠코를 돌아보았다.

 

  “제니게바가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쥬시가 겁먹었잖아. 아주 약간의 전기세가 추가될 뿐이니까 걱정할 것 없어.”

 

  쥬시가 들고 왔던 커다란 상자에서 진짜 전나무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플라스틱과 철사 재질의 접이식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 척척 조립하기 시작하는 둘의 모습에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은 듯한 탄성을 흘린 히토야는 제자리에 도로 앉으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하필 내 사무실이냐?”

 

  “그럼 절에서 하랴?”

 

  “쥬시네 집에서 하면 되잖아. 그리고 너 말 잘했다, 스님이 크리스마스는 무슨 얼어죽을 크리스마스야? 개종했냐?”

 

  “이런 건 셋이서 해야지. 그리고 뭐…, 사실은 원래 절에서 하려고 했어. 산타모자를 쓰고 리스를 목에 건 불상을 발견한 영감한테 엉덩이를 걷어차이기 전까지 말야.”

 

  “걷어차일 만 했네!! 아이고,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날의 악몽이구나….”

 

  쥬시가 잔뜩 집중한 채 트리를 조립하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한 쿠코는 작은 상자들 중 하나를 열어 가장 위에 놓여있던 산타 모자를 꺼내 씩 웃으며 히토야에게 내밀었다.

 

  “자, 특별히 양보하도록 할게. 소승과 쥬시를 절에서 쫓겨나게 만든 바로 그 모자다. 불상의 머리에 씌워졌던 만큼 부처님의 지혜가 깃들었을 수도 있지.”

 

  “깃들었다는 것도 아니고, 깃들었을 수도 있다는 건 도대체 뭐냐….”

 

  “하하, 기뻐해주니 좋구만! 쥬시, 저 구두쇠 변호사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선물하고 와라.”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트리 덕분에 들뜬 건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쿠코의 손에 들린 모자를 받아든 쥬시가 훤칠한 거구로 깡충깡충 뛰어와 머리에 씌워주자, 히토야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고맙다….”

 

  “잘 어울림다! 히토야 씨, 산타 같아서 멋있슴다.”

 

  엄지를 척 세워보이고는 돌아가 작은 상자에서 산타 모자를 두 개 더 꺼내 쿠코와 한 개씩 나누어 쓰더니 트리를 마저 완성시키는 쥬시를 바라보던 히토야는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둘의 모습에 작게 픽 웃음을 터트렸다.

 

  “쿠코 씨, 삐걱거림다.”

 

  “그러게, 삐걱거리네.”

 

  “고쳐주세요.”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조용한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보내기엔 글렀다는 생각에 작은 한숨을 쉰 히토야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에게 다가갔다.

 

  “어디 보자…, 저 밑부분이 헐거운 것 같은데?”

 

  “고쳐주시는 검까?!”

 

  “해봐야지, 뭐….”

 

  고정이 잘 되지 않던 가지를 떼어내고 가운데의 기둥에 걸어야 하는 고리 부분의 철사를 손으로 힘껏 눌러 조금 조인 뒤, 다시 걸어본 히토야는 더이상 크게 흔들리지 않는 가지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그냥 좀 헐거워졌던 것 같은데. 어디서 쓰던 걸 주워온 거냐?”

 

  “쥬시랑 돈 합쳐서 중고로 하나 샀지. 쥬시네 집에서 가족끼리 꾸며놓은 트리를 훔쳐올 수는 없으니까.”

 

  “작은 트리는 아닌데…, 돈 얼마나 썼냐?”

 

  “신경쓰지 않으셔도 됨다! 용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었고…. 그보다 선물은 안 주심까?”

 

  “어, 어? 선물? 왜,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트리의 가격을 물었다가 자연스럽게 선물을 줘야 하는 분위기로 몰리는 히토야의 모습에 작게 킥킥거린 쿠코는 상자에서 구슬 모양 장식을 꺼내 쥬시와 함께 트리에 달기 시작했다.

 

  “음… 제가 고르는 검까…. 아! 그러고 보니 단골인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는데, 사주실 수 있슴까?”

 

  “한번 보여줘봐.”

 

  “네!! 그러니까 그게….”

 

  생글생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쇼핑몰에 접속하는 쥬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쿠코는 이내 히토야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천진난만해 보이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소승은 식기세척기가 좋아.”

 

  “뭐…?”

 

  “히토야 씨, 이검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쿠코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쥬시가 내미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화면을 들여다 본 히토야는 체인이 주렁주렁 달린 자켓과 세트로 추정되는 밑단 길이가 일정하지 않고 삐죽빼죽한 발목 길이의 검정 롱 스커트를 바라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걸… 입겠다고?”

 

  “네! 무대의상으로 딱인데, 제 용돈으로는 조금 힘들어서….”

 

  “허…, 심지어 비싸네…. 그리고 이거 치만데?”

 

  “에이, 요새 유니섹스 패션이 대세인 거 모르심까. 사주시면 예쁘게 잘 입겠슴다.”

 

  “히토야, 소승은 식기세탁기가 좋다니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쥬시와 쿠코를 잠시 바라보던 히토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내가 싫어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싸고 이상한 옷을 입는 꼬마고, 하나는 일하기 싫어서 꼼수를 부리는 꼬마다.”

 

  “히토야 씨이…, 저 입을 옷이 더이상 없슴다….”

 

  “아니, 네가 지금 입은 옷도 난 처음 본다. 완전히 새것 같은데.”

 

  “히토야…, 이 겨울에 설거지하느라 다 갈라진 소승의 손을 좀 봐라….”

 

  “갈라지긴 개뿔이…, 내 얼굴보다 매끈하구만.”

 

  코웃음을 치는 히토야에 아쉽다는 듯이 짧게 혀를 찬 쿠코는 쥬시를 돌아보았다.

 

  “할 수 없지. 선물을 가지고 철수하는 수밖에…. 구두쇠에게 줄 건 없다.”

 

  “그러게 말임다. 히토야 씨가 참 좋아할 게 분명했는데…, 이러다 결국 스크루지 영감처럼 되는 건 아닐지….”

 

  사무실 바닥에 놓여있던 상자들 중 하나를 챙겨들고는 누가 보아도 갈 마음이 없어 보이는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문가로 향하는 쿠코와 쥬시의 뒷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던 히토야는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웃음을 억누르려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1년에 한 번쯤이라면야 뭐, 비싼 선물을 받아도 버릇이 나빠지거나 하진 않겠지.”

 

  “작전 성공이다, 쥬시. 복귀다!!”

 

  쿠코와 함께 잽싸게 돌아와 트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장식을 마저 달며, 쥬시는 미소를 머금은 채 저희들을 내려다보는 히토야를 올려다보았다.

 

  “근데, 진짜 사주시는 검까? 방금은 장난이었고… 딱히 사주시지 않아도 괜찮슴다.”

 

  “그래. 너희한테 돈 쓰는 건 별로 아깝지 않으니까.”

 

  몸을 굽혀 상자 속에서 줄줄이 연결된 꼬마전구를 꺼낸 히토야는 트리에 전구를 휘감은 뒤, 가까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쥬시가 트리의 꼭대기에 금색 별장식을 조심스럽게 꽂자, 꼬마전구의 스위치를 킨 쿠코는 화려하게 빛을 내며 반짝이는 트리를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좋네! 사무실에 트리를 들여놓으니까 훨씬 화사하지 않아?”

 

  “오, 멋지네. 트리만 만들어놓고 가면 아쉬울 것 같은데, 여기서 밥 먹고 갈 테냐? 케이크든 음식이든 먹고 싶은 거로 시켜줄 테니까.”

 

  “앗…! 쿠코 씨, 히토야 씨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케이크부터 골라요…!!”

 

  잔뜩 신이 난 채, 재빨리 붙어앉아 근처의 배달 가능한 제과점을 핸드폰으로 찾는 쿠코와 쥬시를 바라보며, 덩달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낀 히토야는 둘에게 다가가 함께 제과점의 케이크들을 구경하며 둘의 어깨에 양손을 하나씩 부드럽게 얹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아까 들어올 때 하지 않았슴까?”

 

  “난 안 했어, 너희들이 했지.”

 

  “그랬나? 정신없어서 대답 안 한지도 몰랐네. 메리 크리스마스!”

 

  대수롭지 않게 다시 인사를 건네고는 마저 케이크를 고르는 둘의 모습에, 히토야는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네녀석들이 있으면 항상 정신없지. 나 혼자만의 편안한 시간도 방해받고 말이야….”

 

 

  뭐, 크리스마스 날의 악몽이라고 농담 삼아 말해도 오늘 같은 날에는 방해받는 편이 훨씬, 훨씬 더 즐겁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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