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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논자카 돗포는 얼마 전 SNS를 시작했다. ‘돗뽀, 이런 거라도 해야 덜 아저씨같아 보인다구~!’라는 소꿉친구 이자나미 히후미의 놀림이 그 계기였다. 처음 계정을 만들 때만해도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거지’, ‘팔랑귀인 내 탓인가’라며 투덜대던 돗포는 어느 새 SNS의 재미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 DOPPO

@doppo__

 

달달한 게 당기는 날입니다. 일이 많아서 그런가….

 

2020. 04. 30 11 : 03 오전 ]

 

-

 

 돗포는 평소처럼 짧은 글 하나를 올리고 휴대폰을 뒤집어 두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작은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고 거래처와의 미팅 일정을 확인했다. 1시까지 요코하마로 넘어가야 했다. 필요한 서류와 제품을 챙기고 나면 시간이 애매하게 남는다. 그런 이유로 점심은 거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익숙한 일이었으니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에 쫓겨가며 밥을 먹을 바에는 차라리 조금 쉬는 편이 나았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갈까….’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동료 직원들에게 잘 다녀오라 인사하며 사무실이 비기를 기다렸다. 몇 분 정도 지나 마지막 직원까지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그제야 돗포는 기지개를 쭈욱 켰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탕비실로 간 돗포는 커피를 한 잔 타고, 옆에 있던 비스킷을 몇 봉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 정도 횡령 쯤은 괜찮겠지, 하는 작은 반항이었다. 그래, 내가 회사에서 구르는 게 얼만데. 그럼그럼.

 자리로 돌아와 비스킷 하나를 오물거리던 돗포는 뒤집어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잠깐의 여유 시간동안 SNS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화면을 켠 순간 돗포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 띄워졌다. 동시에 공포가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야]

“네, 네…!”

 

 자신도 모르게 문자에 대고 대답을 한 돗포는 책상에 이마를 쿵 박았다. 사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누군가 이 꼴을 보았다면 분명 이상하고 한심한 놈 취급을 했을 것이다.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들자 동시에 또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씹냐?]

✉[죄송ㅎ반더ㅣ]

✉[죄송합니다!!!]

✉[됐고, 너 오늘 뭐 해?]

✉[일이요….]

✉[어디에서 몇 시에?]

✉[그건 왜….]

✉[왜?]

✉[1시 30분에 요코하마 중앙병원에서 미팅 있습니다!!]

✉[지금은 어딘데?]

✉[회사요….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데….]

✉[내려와.]

✉[네?]

✉[내려오라고. 귀찮으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쾅 소리가 나게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은 돗포는 후다닥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정문 앞에 낯익은 까만색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랩배틀 때 보았던,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의 것이 분명했다.

 기다리게 하면 죽을 것이다. 단숨에 머릿속을 꽉 채운 그 생각에 돗포는 후다닥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긴장과 두려움에 절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일단 빌자. 뭔진 모르겠지만 빌고 보자. 칸논자카 돗포는 굳게 다짐하며 후들후들 떨리는 발을 내딛었다.

 

“왜 이렇게 늦….”

“죄송합니다!!!!”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마토키를 보자마자 돗포의 허리가 그의 휴대폰처럼 반으로 접혔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중얼거리는 돗포를 가만히 쳐다보던 사마토키는 발로 담배를 지져 끄며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네, 네!”

“내가 언제 너 잡아먹는댔냐?”

“그, 그건, 아니지만….”

“타. 데려다 줄테니까.”

 

 사마토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돗포는 5초 정도 어벙한 표정으로 눈만 꿈뻑거렸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거 들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돗포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

“타라고.”

 

 물론 사마토키의 한 마디에 다시 쪼그라들긴 했지만 말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조수석에 탄 돗포는 최대한 작은 움직임으로 벨트를 맸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향수를 뿌린 후 운전석에 앉은 사마토키가 운전대를 잡는 모습을 곁눈질로 슬쩍 쳐다본 돗포는 겨우겨우 작게 입을 열었다.

 

“저기, 벨트….”

“뭐라고? 크게 말 해. 안 들려.”

“벨트, 매셔야….”

“한 번만 더 웅얼거리면 죽는다.”

“벨트 매셔야 하지 않을까요?!”

 

 시원한 음이탈에 돗포는 그만 죽고 싶어졌다. 그냥 입 다물고 있을걸, 내가 왜 그랬지?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부들부들 떨던 돗포는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다시 힐끔 고개를 돌렸다. 루비마냥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걱정되냐?”

“죄, 죄송합니다….”

“누가 사과하랬어?”

 

 낮은 음성에 움찔하며 고개를 홱 돌린 돗포는 다시 제 발끝만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의 정적을 깨고 다시 한 번 걱정되느냐 물어오는 목소리에 결국 돗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킬킬대는 사마토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가 매 주든가, 걱정되면.”

 

 히끅. 장난기 가득한 사마토키의 말에 돗포의 몸이 들썩거렸다. 급하게 입을 막은 돗포의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 건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안 매주면 그냥 출발한다.”

 

 누가 들어도 매 달라는 말과 출발한다면서도 꼼짝도 하지 않는 그의 행동에 결국 돗포는 자신의 벨트를 풀고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벨트를 잡으려 가까이 다가가자 사마토키를 닮은 시원한 향수 냄새와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긴장한 탓인지 자꾸만 쿵쿵대는 심장 소리를 지워내려 돗포는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숨을 꾹 참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차를 출발시키는 사마토키를 보며 돗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은 모양이야….

 그렇게 한참의 정적이 흐르고, 어렴풋이 요코하마의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자 사마토키는 창문을 내리고 한 쪽 팔을 창틀에 걸쳤다.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빤히 쳐다보던 돗포는 사마토키의 야, 한 마디에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그거 열어봐.”

“여, 열었어요.”

“봉투 있지? 하얀 거.”

“네에….”

“가져. 네 거야.”

 

 돗포는 물건 보관함 속에 놓인 흰 봉투를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바스락거리며 봉투를 헤치자 투명한 포장지에 담긴 알록달록한 디저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콜렛부터 시작해서 캬라멜, 마카롱, 다쿠아즈, 슈니발렌, 터키시 딜라이트, 생전 처음 보는 이름 모를 과자들까지. 각종 디저트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돗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사마토키를 바라보았다. 그의 귀가 조금 붉어진 듯한 착각이 든 것도 같았다.

 

“단 거 먹고 싶다며. 글 올렸잖아. 먹어.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눈에 보이는 건 다 산거야.”

“어…, 그, 그걸, 보셨….”

“불만 있어?”

“아뇨…!”

“케이크 같은 건 흔들려서 부서질까봐 안 샀는데. 설마 케이크 좋아하냐? 아 씨….”

“아니, 아녜요!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한데, 아니, 제가 이걸 받아도 되나요…?”

“싫으면 버리든가.”

“…감사합니다….”

 

 봉투를 소중하게 품에 끌어안고 있던 돗포는 힐끔힐끔 사마토키의 눈치를 살피다가 신호에 걸린 차가 멈추자 작은 마카롱 하나를 꺼내 보았다. 돗포가 마카롱을 입에 물고, 그 마카롱의 반 쪽을 사마토키가 베어 문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달아.”

“…#^@-?!??!”

 

 새빨개진 자신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사마토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돗포는 얌전히 남은 마카롱 반 쪽을 입에 밀어넣었다.

 얌전히 오물거리며 입 안에서 마카롱을 녹여가는 동안 어느 새 차는 미팅 장소 앞에 멈추어 섰다. 디저트 봉투를 잘 묶어 가방 안에 넣고, 벨트를 풀고서 데려다 주어 고맙다며 인사를 하려고 몸을 틀었다. 바로 그 때,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이번에는 담배 냄새 대신 옅은 바닷바람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마카롱을 먹어 끈적거리는 입술에 말캉한 무언가가 맞닿은 것은 정말로, 정말로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시야에는 씩 입꼬리를 올린 채 멀어지는 사마토키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이 쪽이 낫네, 아까 그 과자보단.”

 

 하나, 둘, 셋. 정신이 들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그 후 얼굴이 달아오르기까지 정확히 3초의 시간이 걸렸다. 손등으로 입술을 가린 채 뻐끔거리던 돗포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도망치듯 차에서 내려 병원 쪽으로 달려갔다.

 입 안에서 씁쓸한 맛이 맴돌았다. 얼굴이 자꾸만 붉어지고, 심장이 쿵쿵거리고, 그러면서도 어쩐지 싫지 않은 것이 담배를 처음으로 피워 본다면 꼭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혀가 아릴 만큼 달았던 마카롱 탓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칸논자카 돗포는 거래처 직원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고 있었다.

르와님.png

W. 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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