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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디모

※케이크버스 AU,식인언급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포크와 케이크라는 사람이 소수로 존재한다고 한다. 사람에게 음식과 도구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지만 포크가 케이크에게 이끌려 식인을 저지른다. 그런류의 괴담은 의외로 상당히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던 돗포 역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 또래들이 그러하듯 더운 여름에 한 번쯤 풀 법한 으스스한 괴담 정도로 취급했다.

 

 

 

"돗포는 진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글쎄.. 애초에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는걸.. 물론 내가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없다고 하는 것도 그 사람들에게 실례이긴 하지만..."

 

"음~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할걸? 다들 괴담만 들었지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없으니까~ 역시 그런 범죄가 일어날까 관련한 흉흉한 괴담이 돌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히후미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보울을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맞벌이하시는 돗포의 부모님이 어쩌다가 한번 이용하는 주방에 히후미가 들어가기만 하면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언제나 생기가 가득해졌다. 핑크빛 레몬크림처럼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기운과 함께 기분 좋게 산뜻한 단내가 공기 중에 맴돌았고 항상 온기가 그리웠던 돗포는 히후미와 함께하는 요리시간을 좋아했다.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면 언제나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뭐 만들 거야?"

 

"오늘? 뭘 만들지 돗포가 한번 맞춰볼래?"

 

 

 

히후미의 등 뒤에 서 있는 돗포의 표정은 이번에도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그의 절친이라고 해도 흔하게 볼 수 없는 표정이었기에 손은 바쁘게 놀리는 와중에도 곁눈질로 그의 얼굴을 엿봤다. 매번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서 돗포가 유독 자신이 만든 요리는 잘 먹는다는 걸 알고 나선 끼니를 챙겨준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시작한 일이었다. 덕분에 손가락이 성한 날이 없었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입안 한가득 넣고 오물거리며 맛있다고 말해주는 그 모습을 보면 없던 피로도 한 번에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음.. 크림과 빵 시트가 들어가는 거라면.. 역시 케이크?"

 

"으음~ 비슷하지만 그냥 케이크는 아니야!"

 

"그럼.. 밀푀유?"

 

"아니야! 밀푀유는 빵시트를 쓰지 않는다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럼 뭘 만드는 건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 하니 뾰로통해진 돗포가 오만상을 찌푸리자 그가 와핫! 함박웃음을 터뜨린 뒤 완성된 레몬크림을 손가락에 묻혀 돗포의 입가로 가져가자 저절로 입이 열리면서 그것을 받아먹는다.

 

 

 

"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잔뜩 구겼던 미간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향긋하고 달달한 맛에 만족한 듯 다시 풀리는 것을 본 히후미가 다른 손으로 그의 뺨을 쓸어올리는 사이, 띵! 신호음이 울렸다. 오븐 문을 열자마자 갓 구운 노릇노릇 한 빵 냄새가 더 짙게 풍기면서 없던 식욕도 저절로 끓어오르자 돗포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음식을 탐하는 것이 죄악이라도 된 거처럼 최근 들어 주체할 수 없어진 자신의 식욕에 갈피를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입맛이 변한 건지 지독한 사춘기인 건 진 몰라도 부모님이 차려준 밥보다 히후미가 만들어준 빵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재료라던가 조리법이 변한건 분명 아닐 텐데도 자신의 변덕 때문에 고심하셨을 부모님에게 일종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잘 먹지 않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히후미가 부엌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준 덕분에 그의 음식을 마음껏 맛보게 된 것에 대해선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역시 나 같은 아들.. 굉장히 최악이겠지. 남자애가 이런 거나 좋아하니까 기분 나쁘게 보일 테고"

 

"또 그런 소리 한다! 그럼 오렛치도 남잔데 남자가 이런 거 만드는 거 기분 나빠?"

 

"엑... 그런 말은 아닌데.."

 

"사람 입맛은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잖아?"

 

 

 

빵 시트를 적당한 크기로 정갈하게 자른 뒤 그 위에 질펀하게 크림을 얹는다. 지저분한 욕망을 감추듯 그것을 여러 번 쌓아올린다. 맨 아래에 깔려있던 유선지로 돌돌 말아 둥글게 말자 그럴듯한 롤케이크가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본 건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며 흡족해하던 히후미는 돗포에게 브러시를 내밀었다. 겉 부분을 살구 잼으로 바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제법 심혈을 기울였지만 균일하게 발라지지 않아 어딘가 엉성하게 느껴졌다. 기껏 잘 만든 빵을 망쳤다는 생각에 우울해할 틈도 없이 히후미가 그의 손을 겹쳐잡고 전체적인 모양만 다듬어주었다.

 

 

 

"어차피 이 위에 꾸며줄 거니까 조금 망쳐도 괜찮아"

 

 

 

격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그가 항상 돗포를 위로하던 방식이다. 작은 유리그릇에 담아두었던 슬라이스 아몬드와 우박 설탕을 위에 골고루 뿌려주자 먹음직스러운 롤케이크가 완성되었다. 돗포의 입장에선 생소한 외형이었지만 롤케이크라는 디저트의 유형 자체가 생소한 것은 아니니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돗포돗포! 이 디저트 이름이 뭔지 알아?"

 

"뭐..? 이게 이름이 따로 있었어?"

 

"야벳ww 돗포칭 반응 너무한거 아니냐구! 이래 봬도 유명한 프랑스 디저트란 말이야!"

 

 

 

프랑스에서 유명한지 일본에서 유명한지 내가 어떻게 안담... 히후미를 잠시 흘겨보던 돗포가 다시 한번 롤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달콤한 크림을 가득 품고 있을 빵은 수줍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레몬크림 롤케이크라던가 그런 식의 네이밍밖에 생각할 수 없는지라 도대체 무슨 이름이길래 히후미가 저렇게 뜸 들이는 표정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브라 드 베누스(Bras de V'enus)라는 디저트야. 우리말로 치면 비너스의 팔이라고 한다네~"

 

"... 팔? 사람 팔 말하는 거야?"

 

"그만큼 너무 맛있어서 그렇게 불린다던데~ 희한한 이름이지?"

 

 

 

분명 유명한 디저트라 했고 레시피대로 정성 들여 만들었을 테니 맛있다는 말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의 이름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먹는 음식에게 굳이 신체 부위의 이름 따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냔 말이다. 아무리 찬사를 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해도 신의 입장에선 신성 모독이 아닌 지하는 쓸데없이 진지한 생각까지 들었다.

 

 

 

"가뜩이나 요즘 흉흉한 소문 도는데 이런 걸 만들어야겠냐? 너도 참..."

 

"에잉, 그래서 안 먹을 거야 돗포?"

 

"뭐? 제정신이야? 당연히 먹어야지. 누가 만든 건데. 그러고 보니.. 레몬크림인데 핑크색이네, 색소를 따로 넣은 거야?"

 

"음~ 색소라기보단~ 내 마법의 재료를 함께 넣었지! 그래야 더 맛있어진다고! 돗포를 향한 오렛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줭♥"

 

 

 

양팔로 하트를 만드는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모님 외에 자신을 챙겨주는 건 히후미 밖에 없으니 그에게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들었다. 솔직히 잘생기고 다정하고 요리까지 잘하는 이런 애가 왜 자기 같은 음침한 인간과 다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지만 이마저도 복에 겨운 생각일 것이다.

 

이름이 꺼림직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것도 배를 채우고 난 다음 할 일일뿐이었다. 히후미가 신나게 칼을 들어 먹기 좋은 크기로 빵을 자르기 시작했고 예쁘게 잘린 핑크빛 크림이 보이는 단면을 보고 있던 돗포는 자기도 모르게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자, 돗포 아~"

 

 

 

포크에 힘을 주자 케이크가 짓이겨진다. 크림 범벅이 된 빵덩어리를 혀로 굴리자 확 퍼지는 쌉싸름한 레몬향이 그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뇌에 각인되는 듯한 달콤함이 끊임없이 포크질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 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포크와 케이크 이야기, 케이크를 난도질해야 살 수 있는 포크와 비너스의 팔을 뜯어먹고 있는 자신이 무엇이 다를까?

 

 

 

"왜 그래 돗포?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졌어. 맛없는 거야?"

 

".. 아니 그냥... 이름만 이상한 디저트를 먹는 것도 기분이 이상한데 다른 사람을 헤쳐야 살 수 있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해서..."

 

"아하, 아까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이구나~ 돗포는 그들의 식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데?"

 

"물론 괴로운 건 알지만.. 그렇다고 식인을 용납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게 본성이니 이해해 주자~ 해버리면 다른 범죄도 처벌 내리지 못하는 명분이 생겨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지!"

 

 

 

히후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크와 케이크로서의 발현은 일종의 재난과도 같다. 나의 일상을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다수가 겪지 않는 일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생을 향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만약에, 만에 하나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히후미는.. 안 먹어? 매번 나만 먹는 거 같은데..."

 

"으음~? 오렛치는 돗포칭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걸!"

 

"그렇지만... 맨날 그렇게 다치면서까지 만드는 거잖아. 아무리 날 위해서라 긴해도... 이러면 나도 먹기만 해서 미안해지는데..."

 

 

 

돗포의 시선이 반창고가 칭칭 감겨있는 손가락으로 향했다. 칼에 베이고 불에 데이면서까지 만들어주는 음식을 그는 한 번도 손댄 적 없었다. 이유를 물어도 아까처럼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둥, 입맛이 없다는 둥 여러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니 돗포의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돗포가 먹는 거 계속 보고 싶어서 그런 걸... 내가 먹어버리면 돗포가 먹을게 없어지니까 안돼!"

 

"... 정말 그 이유라고?"

 

"없어!"

 

"그럼... 내가 먹여주면.. 먹을 거야?"

 

"오? 돗포가 먹여준다고?? 어떻게?"

 

 

 

어떻게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이자나미. 돗포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잠깐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받아먹기만 하는 것도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케이크를 입안에 물고 이리 오라 손짓하자 히후미가 껌딱지처럼 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대로 입술을 포개고 살짝 벌어진 틈새로 찔러 넣어 크림 범벅이 된 입안을 훑는다. 중간중간 비릿한 향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혀를 놀리는데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살짝 틀어 더 깊이 침범한 혀가 그의 입안을 온전히 취한다. 질식할 것만 같은 강렬한 입맞춤 후 떨어져 나간 혀끝으로 분홍빛 타액이 길게 이어진다.

 

 

 

"히후미는.. 만약에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정말 변해버려도... 내 곁에 있어줄 거야?"

 

"엥 당연하잖아! 돗포는 오렛치의 친구인걸!"

 

 

 

다시 케이크 조각이 입안으로 들어오면서 히후미의 혀가 함께 들어온다. 타액이 서로 얽히면서 생크림을 천천히 녹이기 시작한다. 딱 달라붙은 두 상체가 떨어질 줄 모르고 서로를 얽매었다.

 

 

 

"오렛치는 언제나 돗포의 편이야. 오렛치의 음식은 오직 돗포만을 위한 거니까~"

 

 

 

히후미는 조용히 다가오는 재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찬고 투성이인 손가락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의 몸은 변해도 우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그치? 너를 위해서라면 내 피와 살점도 아낌없이 다 내어줄 수 있어. 스스로의 다짐을 끊임없이 되뇌인다.

 

달콤한 키스가 만족스러운 듯 입술이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린다.

 

오늘도 근사한 디저트를 즐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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