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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MERRY! 29!>

 

 

내뱉은 입김이 새하얗게 번져간다. 이젠 어느 모로 보나 완연한 겨울이었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던 돗포는 발걸음을 더 바삐 재촉했다. 으, 늦었다 늦었어. 해가 빨리 떨어지는 계절이라 매서운 겨울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별다른 불평 없이, 돗포는 옷깃을 여민 채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안 그래도 퇴근이 늦어진 탓에 이미 삼십 분 정도 지각이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오늘 같은 날마저 정시 퇴근을 못한 스스로에게 한숨만 폭폭 나왔다.

 

‘우와, 일루미네이션….’

 

그 와중에도 거리를 메운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워서 더 부질없게 느껴지는 빛들이었다. 12월이 되었단 뜻이었고 또 올해가 슬슬 끝나간다는 의미기도 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묘한 기분에 돗포는 괜히 한 손에 든 종이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냐면…. 비록 오늘 모임이 송년회에 가깝긴 했지만 날이 날인지라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싶어 산 것이었다. 이걸로 지각한 걸 좀 봐주면 좋을 텐데, 과연 어떨지……. 연신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돗포는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다. 쉴 새 없이 발을 놀린 탓인지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보니 마침내 모이기로 했던 가게에도 도착했다. 부랴부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돗포는 미리 전해 들은 개인실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조금 어깨를 움츠리며 꽉 닫힌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그, 늦어서 죄송해요!”

 

등 뒤에서 문을 닫자 은은하니 고급스러운 술 향기가 밀려와 코끝에 닿았다. 나직하게 오가던 대화가 멎고, 좌식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인영이 그대로 돗포를 돌아보았다. 겸연쩍게 웃으며 묵례하자 전혀 다른 톤의 목소리 두 개가 그대로 웃음기를 띠었다.

 

“오, 늦었네. 돗포!”

“어서 오시죠, 칸논자카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동거인인 이자나미 히후미고 다른 쪽은 요코하마의 경찰 이루마 쥬토였다. 따스한 환대에 조금 마음이 놓인 듯, 돗포는 힘 빠진 팔다리를 끌며 천천히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딱히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제자리라는 걸 아는 것처럼, 알아서 테이블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앉았다. 각 자리마다 따뜻하게 데운 사케가 놓여 있는 걸 보아 아까 맡았던 술 향기의 정체는 이것인 듯했다. 히후미 취향의 술은 아니니 아마 쥬토가 시켰을 확률이 높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루마 씨. 그리고 히후미도.”

 

추위로 인해 사과처럼 붉어진 뺨을 한 채 돗포가 재차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그리곤 서둘러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었다. 직업도 차림새도 그리고 성격마저도 천지 차이로 다르지만, 나이만큼은 같은 29세 삼인조가 그리하여 겨우 한자리에 모이게 된 셈이었다.

 

“으아, 따뜻하다.”

 

겨우 앉을 수 있어 좋다는 듯 돗포가 낮게 신음했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던 바깥을 걷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니 저절로 긴장이 턱 풀리는 것 같았다. 꾸물꾸물거리며 코트를 벗는 사이 옆에서 차를 따라주던 히후미가 질겁한 얼굴을 했다.

 

“으엑, 돗포. 방금 그 소리 엄청 아저씨 같애!”

“너도 같은 나이면서 무슨.”

 

돗포는 들은 체 만 체하며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는 음식들에 차례대로 시선을 주었다. 이번 모임 장소를 고른 사람은 이루마 쥬토였다. 아까 봤던 사케도 그렇고. 정갈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나 소량씩 솜씨 있게 차려진 음식에서 그 사람 특유의 가게 취향이 묻어났다. 더불어 저녁을 먹지 않은 것은 자신뿐이었는지,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한 접시를 보니 갑자기 식욕이 돋기도 했다. 비싼 음식 같은데 아깝다. 돗포는 냉큼 젓가락을 들어 눈앞에 놓인 생선회를 몇 점 집어 먹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싱싱한 감촉과 함께, 씹을수록 느껴지는 단맛이 기분 좋았다. 부드럽게 녹아들어 술술 넘어가는 탓에 금세 또 혀가 허전해진다. 허겁지겁 다시 젓가락을 놀리는 돗포를 보면서 이루마 쥬토가 미소 지었다.

 

“한참 일이 바쁘실 텐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아, 아뇨…! 더 빨리 오고 싶었는데 그놈의 대머리 과장이 또….”

 

돗포는 잔뜩 긴장한 어깨를 움츠렸다. 그는 아직도 이루마 쥬토가 말을 걸어올 때면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숨을 들이켜곤 했다. 도저히 마음 편히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고 할까. 비록 히후미와 셋이서 정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모임을 이어오곤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사람의 미소를 볼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아서. 애초에 제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불심검문이었던지라, 그리 좋은 추억만은 아니라서 그렇다.

 

“그래그래, 기껏 우리를 배려해서 신주쿠에 가게를 잡아 줬는데 요코하마에서 오는 이루맛치보다도 늦다니 돗포 넘하지 않아~?”

 

하지만 상대가 이자나미 히후미라면 얘기는 달라졌다. 돗포는 어금니를 뿌득 깨물면서 자세를 바로 하더니 히후미를 노려보았다. 어찌나 이를 꽉 물었는지,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나머지 생선 살들이 한꺼번에 으스러질 정도였다.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란 말야! 젠장, 나라고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닌데! 무, 물론 그래봤자 뭐, 어차피 늦은 건 사실이고… 일찍 퇴근할 수도 없는 이런 회사에 다니는 내가 나쁜 거겠지만…. 으으.”

“오우, 벌써 반성 타임?”

“…크윽. 그러는 히후미 너야말로 오늘 오프라니 괜찮은 거야? 가게 바쁘지 않아?”

 

사실 중간부터는 이루마 쥬토의 눈치가 보여 급격히 목소리 톤을 낮춘 셈이었지만, 돗포는 그날따라 자신의 한탄을 중간에서 끊은 히후미가 유독 얄밉기만 했다. 그래서 앙갚음이라도 하듯 일부러 날카롭게 되받아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동거인, 이자나미 히후미는 가부키쵸에서 제일 잘 나가는 소위 넘버원 호스트였다. 평소에도 워낙 바쁜 몸인데, 크리스마스 같은 빅 이벤트라면 히후미를 지명하겠단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일 것이다. 그런 그를 무려 오늘 같은 날 쉬게 해주다니 가게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써서 빠져나온 것인지, 돗포는 그 비결이 못내 궁금했다. 잘만 하면 자신도 다음 휴무를 신청할 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알고 싶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히후미는 이런 일에 대해 전후 사정을 줄줄 털어놓는 편이었기에 그의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괜찮아, 괜찮아~ 가게에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오늘 하루 쉬는 대신 연말연시까지 죽어라 일해주기로 매니저랑 합의했단 말씀!”

 

히후미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털어놓고 있긴 하지만 정작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마디로 오늘을 담보로 잡힌 탓에 새해 초까지는 휴일이 없다는 것과 다름없는 소리였다. 전혀 부럽지도, 써먹을 수도 없는 시시한 전말이다. 덕분에 돗포는 냉정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었다.

 

“연초부터 미친 듯이 술 냄새 풍기면서 귀가한단 소리네.”

 

바라지도 않았던 절망이 찾아왔다. 결국 자신이 휴무를 따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잠깐 기대했던 탓인지 더 상심이 커서 돗포는 연신 한숨만 쉬어 댔다.

 

“아참, 맞다. 이루맛치는 어때? 사실은 오늘도 근무해야 하는 날 아냐?”

“헉. 이루마 씨도 바쁘신데 일부러 여기까지 와주시고… 죄송합니다!”

 

아, 그랬었지.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눈앞의 이루마 쥬토도 오늘 같은 날 직장을 쉬고 여기까지 달려와 줬다는 사실을. 모처럼 셋이서 갖는 모임인데, 그리고 크리스마스인데! 셋 중 제일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자신만이 휴일을 따내지 못하다니. 돗포는 한층 더 울컥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온갖 죄책감이 폐부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연말이니까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들 똑같이 바쁜 게 당연한데, 그런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들어 면목이 없다. 새하얗게 질렸다가 곧바로 침울해지는 그 표정 변화를 본 모양인지, 이루마 쥬토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돗포의 눈앞에서 장갑 낀 손을 휘저어 댔다.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저야 원래부터 오늘을 지정해서 일찌감치 휴무를 따두었으니까요. 이 모임이 없었더라도 아마 오늘은 쉬었을 겁니다.”

“오오, 역시 이루맛치! 그거 언제 신청해서 언제 승인받았는데?”

“대략 3개월 전이죠.”

 

이야, 철두철미하구만. 히후미가 감탄했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돗포도 입을 딱 벌리고 함께 감탄했다. 그렇게나 한참 전부터 쉬는 날을 계획하고 있던 거구나, 이 사람은. 문득 자신도 그런 식으로 휴일을 따낼 수 있을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치만 무리겠지? 지금 당장 내일 처리해야 할 일을 추스르는 것도 힘에 겨운데, 3개월 뒤 쉬는 날을 미리 생각하다니. 그런 사치스런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옆자리에서는 히후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아참! 하고 짤막하게 외쳤다. 그리곤 팔을 쭉 뻗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커다란 초록색의 모엣 샹동 샴페인 병을 집어 들었다. 위아래로 신나게 흔들어 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샴페인을 터트리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모양이었다.

 

“자, 그럼 이제 돗포도 왔으니까 따도 되겠지? 건배할 사람? 히후밍이랑 크리스마스 기념 건배할 사람??”

“저야 좋습니다만. 이자나미 씨는 오늘 같은 날마저 샴페인을 마셔도 괜찮은 겁니까? 평소에도 질리도록 마실 텐데요.”

“괜찮아 괜찮아~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에 샴페인이 빠져도 아쉬우니까!”

 

왜… 저 두 사람은 무슨 대화를 하건 다 매끄럽게 술술 잘 흘러가는 것 같을까. 어쩌면 둘 다 이미 나보다 더 친해졌을지도… 윽. 역시 내가 모임에 늦은 탓인가. 눈앞에서 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샴페인 병이 오픈되는 걸 보며 돗포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리곤 사이좋게 서로 콸콸 넘치도록 잔을 채워주는 쥬토와 히후미를 바라보다가, 문득 본인도 뭔가를 갖고 왔다는 사실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그, 그러고 보니 저 케이크를 사 왔는데요!”

 

하마터면 그대로 까먹어버릴 뻔 했다. 돗포는 종이가방을 뒤져, 어떻게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싶어 샀었던 케이크 상자를 꺼냈다. 나름대로 좋은 베이커리를 알아보고 오늘 날짜에 맞춰 특별 주문해뒀던 것이라 조금은 자신 있었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자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달콤하고 쌉쌀한 초콜릿 향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통나무처럼 잘라 놓은 것처럼 생긴 기다란 초콜렛 케이크 위에 새하얀 슈가 파우더가 뿌려져 있고, 그 주위를 호랑가시나무 장식으로 덮어 계절감을 더한 케이크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문구도 초콜렛 판에 멋들어지게 쓰여있다. 히후미가 우선 히에~ 하고 감탄했고, 좋은 걸 사 오셨군요, 하고 중얼거리는 쥬토의 목소리도 그 뒤에 섞여 들려왔다.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모양인지, 귓불이 발갛게 상기된 돗포가 당당하게 외쳤다.

 

“그게, 크리스마스에는 역시 해쉬드 비프라는 케이크가 좋다고 해서요…!”

“…돗포, 뷔슈 드 노엘을 잘못 들은 거 아냐?”

“그거나 이거나 뭐가 달라, 딴지 걸지 마. 그, 그럼 이루마 씨, 일단 초도 꽂겠습니다!!”

“엑, 저기요? 뭔가 내 취급 너무하지 않아?! 히후밍 울어버린다구?”

 

그 잠깐의 틈을 타 다시 투닥거리는 돗포와 히후미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루마 쥬토가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자신 앞에 놓여있던 샴페인 글라스를 들어 올려 둘의 말싸움을 익숙하게 중재시켰다.

 

“자자 그러지 마시고, 샴페인 얘기가 먼저 나왔으니 우선 건배부터 할까요?”

“앗, 넷! 네! 좋아요!”

“오! 역시 이루맛치는 머리가 좋다니깐~”

 

즉각 돗포에게도 콸콸 샴페인을 따라주고 난 히후미가 제 잔을 잡았다. 그리곤 경쾌한 목소리로 건배!! 를 부르짖더니 차례대로 쥬토와 돗포의 잔을 부딪쳐서 맑은 소리를 냈다. 퍽 흥이 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쟤는 도대체 뭐가 저렇게 신나는 걸까, 나 원 참. 돗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얼떨떨하게 같이 건배를 외쳤다. 입술을 오므려 잔에 대고 홀짝이니, 입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샴페인이 향긋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휴일에 캔맥주나 마셔댔지, 샴페인은 정말 오랜만인 듯했다. 꿀꺽꿀꺽 들이켜니 절로 취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씩 속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손발이 후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몸이 나른해진다. 주어진 잔의 반 정도를 비운 채 돗포는 슬쩍 시선을 돌려 히후미를 보았다. 직업병이 나온 것인지 뭔지, 히후미는 이미 단번에 잔을 다 비운 상태였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군요.”

 

그에 반해 고작 한 모금을 홀짝였을 뿐인 이루마 쥬토가, 남은 샴페인을 묵묵히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무덤덤한 목소리였지만 돗포는 그 속에서 어딘가 서운한 듯한 기색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무작정 공감해버린 채, 하릴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게요. 좀 있으면 또 새해가 오고… 또 나이를 먹게 되는 거겠죠, 하하.”

 

때마침, 뷔슈 드 노엘 케이크 위에 조심스럽게 초를 꽂고 있던 히후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대뜸 돗포를 보며 핀잔을 주었다.

 

“정말이지, 돗포는 또 또 그런 우울한 얘기만 하고~!”

“…그치만 연말이잖아. 너도 아니고 어떻게 지금 이 시기에 안 우울할 수가 있겠어. 일단 나부터가 연말이 끝나기 전까지 죽어라 잔업만 해댈 예정이란 말야.”

“어라? 아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폭언하고 있지 않아?”

 

반복되는 두 사람의 말싸움에 이루마 쥬토가 결국 손끝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곤 두 사람을 말리는 대신, 아무 말 없이 히후미가 꽂은 초 위에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하자 쥬토가 짝, 하고 손뼉을 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곧바로 집중된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

 

“이왕 송년회 같은 흐름이 된 김에, 불 끄기 전 각자 새해의 포부를 하나씩 말해볼까요. 우선 저의 내년 목표는 승진입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던 돗포와 히후미가 각자 우와, 하고 입을 모았다. 특히 물기가 차오르듯, 맑아진 돗포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대단하잖~ 역시 나는 이루맛치의 이런 부분이 좋다고 생각해! 끊임없이 위를 향한다는 느낌?”

“맞아요! 이루마 씨 대단하세요! 승진… 으, 저는 대체 언제가 될지…….”

“엣, 그치만 돗포도 얼마 전에 에이스라고 칭찬받지 않았어? 조만간 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히후미를 부러워하며 돗포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윽, 그렇긴 하지만 그거랑 승진은 또 별개의 문제라…. 그보다 히후미 너는 어떤데. 내년에 빌 소원이나 포부 같은 거 있어?”

“나? 뭐, 나야 이미 넘버원을 찍었으니까, 슬슬 후배들에게 가게 간판 자리를 물려줘야 하나 고민 중! 이란 느낌?”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가 갑작스럽게 듣게 된 동거인의 은퇴 희망 소식에 돗포는 순간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크게 떴다. 진심이냐? 너 일 그만둔다고?? 그럼 나는?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아 그저 입을 뻥긋거리기만 했다. 다행히도 이루마 쥬토가 그런 돗포 대신 질문을 이어가긴 했다.

 

“호오, 진심이십니까? 제 발로 넘버원 자리에서 내려오시다니 의외네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히후미가 배를 잡고 크하하, 하고 웃어 댔다.

 

“역시 그렇지? 뻥, 뻥, 뻥이지롱~! 히후밍의 소원은 내년에도 넘버원 자리 굳건히 유지하기!! 입니다!”

“뭐? 노, 놀랐잖아, 히후미. 그런 걸로 농담 치지 마!! 말이 씨가 된다고!!”

“에엑, 그치만 보통 그걸 믿어? 나 아직 완전 건강하다구? 적어도 마흔까지는 넘버원 할 건데?”

 

돗포는 한숨 지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간 떨어질 뻔 했네. 정말이지 이 녀석 때문에 못 살겠다. 더군다나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버릇처럼 이루마 쥬토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자신이 있었다.

 

“기껏 크리스마스에다 쉬는 날이신데, 이런 우중충한 남자 둘이서… 아니, 이놈은 번쩍번쩍거리니까 우중충한 건 저 혼자네요. 아무튼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에, 그러니까 제 소원은… 그… 내년에는 잔업을 좀 덜하게 해주세요…! 인 걸로.”

“돗포, 소원마저 우울하잖~ 기왕 비는 거 승진시켜 달라고 빌면 어때?”

“시끄러워, 이 이상 바라면 벌 받는다고.”

 

항의하는 히후미에게 그렇게 일갈한 뒤 돗포는 다시금 쥬토를 향해 아, 아하하,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금 삐걱거리긴 했지만, 어찌어찌 셋 다 소원을 말하긴 한 셈이었다. 승진과 넘버원 유지와, 적은 잔업 근무를 위해. 재차 건배를 한 후 세 사람은 마음을 다 잡고 함께 숫자를 셌다. 그리곤 셋, 하는 소리에 맞춰서 함께 촛불을 후우 불었다. 미약한 연기가 공중으로 퍼져나갔다. 일렁이던 촛불이 꺼지면서 촛농 녹는 냄새가 풍겼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훈훈했다. 샴페인을 마신 효과가 도는 건지 기분도 좋았다.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에 돗포는 조금 입매를 끌어당겨 웃었다. 이래저래 일이 많았지만 올해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 같은 날을 회사에서 혼자 보내지 않고 이 두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비록 성격도 직업도 다르지만, 같은 나이인 사람들끼리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돗포는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이 셋 중에서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어야 할 텐데….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다음에도 또 이렇게 모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순간 그런 말이 들려와 돗포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직접 자른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건네며, 이루마 쥬토가 그런 덕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잠깐 멍해 있다가, 한 박자 늦게 다급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돗포는 접시를 받아들었다.

 

“네! 아, 저기 이루마 씨만 괜찮으시면 내년에도 또…!”

 

그 순간 히후미가 잽싸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쪽 손을 위로 치켜들며 붕붕 휘젓는 모습이 그야말로 발표시켜 달라고 선생님한테 떼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있지, 있지! 내년엔 크리스마스 스웨터 맞춰 입고 셋이서 모이는 거 어때?”

“그건 싫습니다.”

“엑, 이루맛치 너무하잖~.”

“싫은 건 싫은 겁니다.”

 

이번엔 드물게도 쥬토와 히후미가 실랑이하는 걸 지켜보며 돗포가 마지못해 미소 지었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이루마 씨도 히후미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하고 외친 후 포크로 자신이 사 왔던 케이크를 조금 잘라 입안에 넣었다. 농도 짙은 진한 초콜릿 향이 훅 비강을 간질였다. 혀에 닿자마자 부드럽고도 흐물흐물하게 녹아들어 간다. 한 해 내내 회사에서 받았던 피로가 사라질 만큼 달콤함이었다. 돗포는 저도 모르게 기분 좋게 풀어진 얼굴로 2차 겸, 눈앞의 두 사람을 데리고 갈 만한 노래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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